매일 전쟁터인 연년생 형제 집, 아빠가 판사 노릇을 그만둬야 평화가 옵니다

5살, 6살. 딱 한 살 터울인 저희 집 두 아들은 눈만 마주치면 장난을 치다가도 금세 싸움으로 번집니다.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꼭 형이 집어 든 그 레고 조각을 동생이 갖고 싶어 하고, 형은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근엄한 판사가 되려 했습니다. “누가 먼저 그랬어?”, “형이 양보해야지”, “동생이 뺏으면 안 되지”하며 시시비비를 가려주려 했죠. 하지만 결과는 늘 억울함에 찬 울음바다였습니다. 형은 형대로 “맨날 나만 참으래”라며 상처받고, 동생은 떼쓰면 통한다는 잘못된 학습을 하게 되더군요.

남자아이 둘을 키우며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은, 부모는 판사가 아니라 해설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저희 집의 평화를 지키는 3가지 싸움 중재 원칙을 공유합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묻지 마세요

아이들이 울고불고 싸울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보통 “왜 싸워?” 혹은 “누가 먼저 쳤어?”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최악의 질문입니다. 5살, 6살 아이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왜곡합니다. 서로 자기 탓이 아니라고 소리 지르다 보면 싸움은 더 커집니다.

저는 현장을 목격하면 과거를 캐묻지 않고 현재 상태만 팩트 체크하듯 읊어줍니다. “지금 형은 블록을 계속 쌓고 싶고, 동생은 그 블록이 필요하구나”, “둘 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있네”라고요.

신기하게도 부모가 감정을 섞지 않고 상황만 건조하게 중계하면, 아이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제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내 편을 들어달라고 떼쓰는 게 아니라, 아빠가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것만으로도 진정이 되는 것이죠.

물건에는 주인보다 순서가 있습니다

연년생 형제에게 “네 거 내 거”를 너무 엄격하게 구분 지으면 공유의 기쁨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이좋게 같이 써”라고 강요하면 힘센 놈이 독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순서 규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주인이 누구든 지금 손에 쥐고 놀고 있는 사람이 우선권을 가집니다. 뺏고 싶은 아이에게는 “형이 다 놀고 내려놓으면 그때 네 차례야”라고 단호하게 말해줍니다.

기다리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면 스마트폰 타이머를 켜둡니다. “긴 바늘이 6자에 가면 교대하는 거야”라고 눈에 보이는 기준을 주면, 떼쓰던 아이도 시계를 쳐다보며 얌전히 기다립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참을성과 공평함을 배웁니다.

서열 정리 대신 팀워크를 강조하세요

보통 연년생은 친구 같다고 하지만, 엄연히 형과 동생입니다. 하지만 억지로 “형님한테 까불지 마”라며 서열을 세우면 동생은 반발심만 생깁니다. 반대로 형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강요하면 형은 동생을 경쟁자로 인식합니다.

저는 경쟁 대신 ‘원팀’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합니다. 둘이 힘을 합쳐야만 할 수 있는 미션을 줍니다. “이 무거운 박스 아빠한테 옮겨줄 사람?”이라고 하면 둘이 끙끙대며 박스를 들고 옵니다. 그때 “와, 너희 둘이 합치니까 천하장사네!” 하고 엄청나게 칭찬해 줍니다.

닌텐도 게임을 시켜줄 때도 서로 대결하는 게임보다는, 둘이 협동해서 적을 물리치는 게임을 골라줍니다. 서로가 경쟁자가 아니라 전우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죠.

마무리하며

아들 둘 키우는 집에서 고함 소리가 안 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심판석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는 해설석에 앉는 순간, 싸움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사회성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오늘도 층간소음을 걱정하며 육아 전쟁을 치르는 모든 연년생 부모님들,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이 시기만 지나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줄 거라 믿으며 오늘 하루도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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